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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3. 25.

현재 저는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특히 HPI로서 구성원과 리더 사이를 연결하고, 주변의 저연차 구성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며, 리더에게는 힘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무엇을 더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조직 안에서 더 성장하고 더 큰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떤 태도와 훈련을 가장 중요하게가져가야 할까요?


성장은 내 안의 미성숙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 욕구와 불안, 두려움 속에서 흔들리며 감정과 습관에 끌리기도 합니다.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아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을 더 정확히 보고 타인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관계는 사람을 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어떤 환경이 되어주는가의 문제로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조직에서의 성장은 더 많은 일을 맡는 것이 아니라 리더와 동료에게 신뢰와 안정을 주고 후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힘이 메타인지입니다. 메타인지는 지금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내가 무엇에 붙들려 있는지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힘입니다. 하지만 알아차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다-깨우다-바꾸다’의 메타적 성찰과 회고를 반복하며 더 나은 반응의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쌓인 습관은 내가 만드는 분위기와 관계의 질을 바꾸고,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꾸게 됩니다. 더 좋은 나가 되어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조직에서의 성장인 동시에 삶을 더 깊고 아름답게 만드는 길입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 인정하기: 성장의 출발점

성장은 자신의 부족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완전하고 흔들림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어른처럼 말하고 일하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하고, 서운함에 쉽게 흔들리며, 두려움 앞에서 움츠러드는 어린아이가 남아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감정과 습관에 끌리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것은 개인의 결함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조건입니다. 누구에게나 불안이 있고, 인정 욕구가 있으며, 때로는 질투와 비겁함도 올라옵니다. 문제는 그런 모습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여기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될수록 자신의 본능적 반응과 오래된 관성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내 안에도 아직 자라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과장하지도 않고, 함부로 몰아붙이지도 않으면서 무엇을 돌아보고 고쳐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을 인식할 수 있고, 익숙한 반응 대신 더 나은 선택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환경이다: 관계의 재정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로 넓어집니다. 나만 흔들리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상대 역시 불안과 인정 욕구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관계는 단순히 사람을 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어떤 환경이 되어주고 있는가’의 문제로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늘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일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무의식중에 내비치는 말투와 표정, 찰나의 반응은 주변 사람의 판단과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늘 누군가에게 하나의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함께 있을 때 괜히 긴장되고 위축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놓여 자기 역할에 집중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불안을 더하는 천둥번개 같은 환경이 될지, 아니면 중심을 잡아주는 따스한 봄바람 같은 환경이 될지는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더 큰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은 단지 맡은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넓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품고, 그 안에서 신뢰와 방향을 만들어 주는 환경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리더에게는 짐을 덜어주는 힘이 되고, 동료에게는 불안 대신 신뢰를 주며, 후배에게는 기준과 안정감을 주는 환경이 될 때 관계도 삶도 함께 확장됩니다. 성장 역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 반야심경의 지혜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상대의 사정보다 내 감정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말을 들으면 서운함이 먼저 올라오고, 예상과 다른 반응을 만나면 두려움이나 불안이 앞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자기 감정과 해석 안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감정에 붙들린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힘, 즉 ‘메타인지’입니다.

메타인지는 지금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있는지, 내가 무엇에 붙들려 있는지, 이 상태에서 바로 반응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한 걸음 떨어져 살피는 힘입니다. 핵심은 감정과 사실, 감정과 자신을 구분해서 보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순간의 감정에 휩싸이거나 함몰되지 않고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고무심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故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마음에 걸림(집착)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감정이 올라와도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내 마음이 무엇에 걸려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상태입니다. 서운함이 올라오면 그 서운함에 휩쓸리는 대신 그것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이 올라오면 두려움에 끌려가기보다 그 두려움을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감정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 점에서 메타인지는 반야심경의 지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걸림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의 자동 반응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전과 다른 선택이 가능해지고, 그 차이가 쌓일수록 관계를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방향도 함께 달라집니다.

메타인지를 가동하는 일은 처음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반응을 선택하는 일은 익숙한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마치 20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처럼 힘들지만, 매일 ‘메타적 성찰’을 마음의 근력을 강화하면 그 무게를 점차 가볍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메타인지가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힘이라면, 메타적 성찰은 그 힘을 실제 상황에서 작동시키는 구체적인 훈련입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느끼다(메타적 알아차림)-깨우다(메타적 질문)-바꾸다(메타적 조절)’의 과정입니다. 느깨바는 감정을 억누르는 방법이 아니라,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자신을 놓치지 않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입니다.

좋은 습관이 쌓일수록 좋은 환경이 되어간다

메타적 성찰을 통해 반응을 바꾸려는 훈련을 하더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다시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사람은 원래 편한 쪽, 오래 해온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나쁜 관성을 힘으로 끊어내려 하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더 현실적인 방법은 꾸준한 메타적 성찰과 회고를 통해 그 자리에 더 나은 반응의 습관을 새로 심는 것입니다. 감정이 치밀 때 잠시 멈추고, 바로 반응하기보다 한 번 더 돌아보고, 불안을 키우기보다 중심을 잡는 쪽을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이 쌓이면 마음을 다스리는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합니다. 《반야심경》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이치에 어긋난 헛된 생각인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조금씩 멀어져,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는 ‘구경열반(究竟涅槃)’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성장은 자신을 단번에 개조하는 마법이 아닙니다. 내 안의 부족함을 인정한 토대 위에서, 그 본능에 끌려가지 않도록 매일 ‘회고’라는 세수를 하며 더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정직한 노동입니다. 내가 변하면 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내가 만드는 환경이 달라지면 관계의 질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삶 전체의 궤적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우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짧고 귀한 소풍 같은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을 고통에 매몰되어 보낼지, 그 안에서도 의미를 피워내며 살아갈지는 결국 나의 해석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더 좋은 나가 되어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조직에서의 성장이며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