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문답 #43 ― 고객가치가 선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2026. 5. 27.
MAX 기획자로 일하면서 방향을 정하는 것만큼이나, 그 방향을 실제 상품과 고객가치로 만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상품을 기획할 때 방향은 맞다고 믿고 시작했지만, 실제 시장 반응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팀의 확신이 흔들리고 조급해질 때 무엇을 기준으로 버티고 계속 밀고 가야 할까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두고 싸운다는 것
상품을 만들 때 정말 어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기술이나 기능의 문제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이 상품이 정말 고객이 원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입니다. 기술 문제는 밤을 새워서라도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가치가 선명하지 않으면 며칠 밤을 새워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고객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보자”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상품을 만들 때부터 이 상품이 고객의 업무에서 어떤 불편을 줄이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손자병법>에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싸운다“는 뜻이지요.
이길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우는 군대는 전장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선명한 고객가치'라는 ‘이길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면 시장 반응을 기다리며 초조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객이 왜 선택할지 이미 알고 있고 확신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상품 개발에서는가치설계와 개념설계가 기능설계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가치설계-개념설계-기능설계-실시설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장문답 40회를 참고해주세요)
왜 가치설계가 먼저인가?
가치설계를 처음부터 고객가치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가설입니다. “고객은 이런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꾸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우리가 이걸 만들면 고객은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가설에서 출발하지요.
가설로 시작했더라도 고객의 문제를 보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구현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해결해야 할 장애를 하나씩 따져보고, 실제 사용할 장면을 계속 그려보아야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이거 쓰면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 “이거 없으면 불편하겠다”, “이건 지금 나한테 필요하다” 싶어야 합니다. 그 지점이 보이면 가치가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설이 점점 구체적인 상품의 상(像)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 점점 가설은 확신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확신이 없는 상태로 시작하면, 바람 불 때마다 “이거 되는 건가, 안 되는 건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의심하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확신을 만들어가는 가치 설계 단계가 중요한 겁니다. 가치가 보이면 이길 조건이 보입니다. 고객이 선택할 이유를 먼저 만들어놓고, 시장에는 실제 고객이 그 가치를 체감하는지 확인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가치설계입니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 ― 무엇을 보고 확신하는가
처음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만들었을 때를 돌아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당시 건축 및 토목 분야 구조해석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텍스트로 입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구조 모델링이나 해석, 설계를 하려면 입력해야 할 정보가 무지하게 많은데 하나하나 텍스트로 입력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기계 분야 프로그램들을 보니 그래픽으로 입력하는 엔진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했죠. “이걸 그래픽으로 바꿔주면 되겠구나.“

텍스트로 입력하던 걸 그래픽으로 바꾸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잘못 입력한 것도 눈에 바로 보이고. 설계자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구조를 화면에서 보면서 작업할 수 있겠지요. 이 정도로도 고객 입장에서는 일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구조해석은 결국 구조설계를 위한 겁니다. 고객이 원하는 건 해석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더 쉽고 정확하게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에는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된 구조해석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을 뿐, 실무자를 위한 구조설계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실무 설계까지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확신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고객의 불편이 분명했고, 해결할 방법도 보였고, 그 해결이 고객의 숨은 욕망, 곧 더 좋은 설계를 하고 싶다는 최종 목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객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걸 구현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마이다스는 “기술적으로 이런 기능이 가능하다”에서 출발한 상품이 아닙니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고객은 구조해석을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설계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텍스트 입력을 그래픽 입력으로 바꾸고, 해석을 설계까지 연결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미 이겨놓고 들어가는 겁니다. 남은 건 시장에서 그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동상동몽 ― 어떻게 팀의 확신으로 만드는가
그런데 상품은 한 사람의 확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획자 혼자 “이건 된다”고 믿는다고 해서 상품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개발하는 사람, 영업하는 사람, 마케팅하는 사람, 경영진이 같은 상을 보고 있어야 합니다. 혼자 확신하면 혼자 움직일 수는 있지만, 조직에서의 성과는 혼자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동상동몽(同像同夢)입니다.
동상동몽이 되지 않으면 동기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동기가 없으면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만 볼 일이 아닙니다. 함께 보고 있는 상이 흐릿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그것이 고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애도 그렇습니다.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연애해라, 연애해라” 한다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 말을 걸지 고민하고, 무엇을 좋아할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지 스스로 방법을 찾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이 선명해지면 동기는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리더와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상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상이 선명해야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어려움을 만나도 다시 방법을 찾습니다.
상품화는 고객이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시간
상품화 과정에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가 풀렸을 때 고객의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MAX’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있는 기능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관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50년 후에 인류는 설계를 어떻게 할까요? 지금 AX 시대에는 무엇이 자동화되고, 무엇이 더 중요해질까요? 마이다스가 가진 기술과 경험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서 아이디어가 나와야 합니다. 물론 50년 후 설계법을 지금 당장 다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상을 먼저 그려야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입니다.
결국 핵심은 같습니다.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처음 만들 때도 고객이 원했던 것은 구조해석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고객은 더 좋은 설계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해석이 아니라 설계에 초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기술을 먼저 보면 기능 목록만 늘어납니다. 고객의 일에서 출발하면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꼭 넣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상품화는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보고, 그것을 실제로 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기능을 넣는 시간만이 아닙니다. 고객이 선택할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놓고 시장에 들어가는 것. 즉,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치를 먼저 설계하는 것. 그게 ‘선승이후구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