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문답 #42 ― '더 나은 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2026. 5. 20.
관계론적으로 보면 '더 나은 나'는 혼자 존재할 수 없고, 결국 '과거의 나'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 나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실제로 더 나아진 것인지 혹은 스스로 더 나아졌다고 해석하는 것인지 우리는 구분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산이 늘어나는 것, 인정받는 것, 앎이 깊어지는 것, 마음의 흔들림이 줄어드는 것 모두 더 나아진 모습입니다. 공자의 말처럼 이치에 맞게 성숙해 가는 것, 예수의 말처럼 더 낮은 곳에 임하고 세상을 더 크게 사랑하는 것도 더 나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더 나음'을 어떻게 어떻게 정의하든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더 나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돈, 명예, 지식 등은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라면 추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까요? 죽음 이후에도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어떨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만난 사람과 세상에 어떤 좋은 흔적을 남겼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아직 어린아이처럼 남아 있는 두려움과 욕심과 상처를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끌려 바로 반응하기보다 지금 내 앞의 사람과 상황에 조금 더 나은 태도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오늘 만나는 세상에 더 좋은 말과 행동을 하나씩 더해가는 과정, 그것이 ‘더 나음’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더 나아졌다"는 말을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더 나아졌다”라고 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재산이 4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늘어나면 더 나아진 것일까요? 사회적으로 나를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나아진 것일까요? 아니면 어제보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흔들리지 않게 되면 더 나아진 것일까요?
사실 다 더 나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앎이 깊어지는 것도 모두 더 나아짐의 한 형태입니다. 공자의 말로 하면, 더 나아진다는 것은 사람이 점점 이치에 맞게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예수의 표현을 빌리면, 더 나아짐은 더 낮은 곳에 임하고 세상을 더 크게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참 좋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의 바탕에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추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끝이 있다면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서 과거보다 돈도 많아지고, 명예도 높아지고, 앎도 깊어졌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나는 더 나아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죽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종점이고, 그 순간 내가 쌓아온 것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끝나는 것이라면, 인생은 너무 서글픈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우리 삶이 유한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더 나아지고 싶어 합니다. 인정받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사실 이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결국 인생은 종점에 다가가 끝나겠지만 더 나아지기를 추구하는 그 마음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더 나음을 추구해야 할까요? 더 나아진다는 것이 나의 부와 명예와 앎으로만 끝난다면, 죽음 앞에서는 너무 쉽게 작아집니다. 그래서 더 나음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에서 한 번 더 나아가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얻은 것, 깨달은 것, 살아오며 겪은 것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좋은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로 말이지요. 내가 남긴 말과 태도와 경험이 누군가를 더 나은 삶으로 움직이게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때 더 나음은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관계 속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더 나은 삶은 누군가의 삶에 남는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가 했던 이야기, 함께 배우고 익힌 것들, 각자가 삶에서 경험한 것들이 누군가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면, 나는 그 사람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고 또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달라진다면, 그 흔적은 다시 다른 관계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면 죽어도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지요. 어쩌면 죽더라도 완성되는 삶, 그것이 더 나음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99.9%가 같습니다. 내 속에 상대가 있고, 상대 속에 내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너를 완전히 갈라놓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더 나은 삶이 아닙니다. 마더 테레사나 예수 같은 사람들은 이런 자기초월의 더 나은 삶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욕망을 넘어 더 큰 사랑과 더 큰 관계 속에서 더 나음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더 나아졌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스스로 좋아졌다고 느끼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과 깨달은 것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 조건으로 남고 있는가. 내가 세상과 더 좋은 상호작용을 만들고 있는가. 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더 나음이 있습니다.
더 나은 나는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더 나은 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내가 세상과 더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그 상호작용이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관계 속에서 더 나아지고 있고, 계속 더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