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 ''

2025. 10. 22.

저는 ‘꼼꼼함’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인식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나’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그리고 이런 차이를 이해하려면 ‘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며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규정하려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다”라는 말 속에는 나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자기 이해가 “나는 원래 이래”라는 생각으로 굳어질 때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고정된 틀에 가두면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가능성마저 닫혀버립니다.

사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는가?”입니다.

고정된 ‘나’라는 착각

“나는 원래 꼼꼼한 스타일인데, 왜 팀에서는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

이런 질문 뒤에는 관계와 상황을 넘어선 어떤 본질적인 ‘나’가 있다는 가정이 숨어 있습니다. ‘꼼꼼함’이라는 속성이 자신을 구성하는 불변의 요소라고 믿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그런 고정된 ‘나’가 존재할까요? 세상은 고정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고, 그 관계가 바뀌면 존재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색상대비 효과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주황색은 언제나 같은 파장의 빛이지만, 옆에 빨간색이 있을 때와 노란색이 있을 때 전혀 다른 색으로 보입니다. ‘주황색’이라는 정의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팀 회의에서의 나, 1:1 면담에서의 나, 고객 앞에서의 나, 후배들과 있을 때의 나가 다른 것은 내가 가면을 쓰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관계와 상황이 달라지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달리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벗어난 독립적인 ‘본래의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 존재

우리는 누군가의 동료이자, 리더이자, 자식이자, 부모입니다. 누군가의 친구이고, 연인이고, 제자이고, 스승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규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꼼꼼함이라는 특성은 어떤 상황에서는 신뢰로, 또 다른 상황에서는 완벽주의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인식하는 ‘나’와 타인이 인식하는 ‘나’가 다른 이유는 우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관계 속에서 매번 다른 맥락으로 드러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식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나’를 고정된 존재로 볼 때는 상황이 변해도 같은 반응을 반복하지만, ‘나’를 관계 속 존재로 바라보면 매 순간 새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이 관계 속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가?”입니다.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나

‘나’를 관계 속 존재로 인식할 때, 시야는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꼼꼼한 사람이니까 하나하나 다 따져보고 나서 실행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속한 팀이 빠르게 의사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어떨까요? 고정된 ‘나’에 매몰되면 또 처음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는 원래 꼼꼼한 스타일인데, 왜 팀에서는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관계 속에서 나를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우리 팀에서 내 꼼꼼함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빠른 실행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속도를 내고, 검증이 중요한 단계에서는 꼼꼼함을 발휘하면 어떨까?”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우리 팀, 우리 조직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고정된 ‘나’는 작아지지만, 관계 속의 ‘나’는 오히려 커집니다. 내가 맺는 관계가 확장될수록 나의 의미와 가능성도 함께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하면 관계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면 조직의 문화도 조금씩 바뀝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모이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의 모습도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