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2026. 4. 29.

최근 여러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구성원들의 욕망을 고객의 욕망으로 연결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입의 타이밍과 깊이를 고민하게 되고, 여러 관계가 제 안에 갇히거나 저로 인해 병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해 나가야 할까요?


관계가 확장될수록 더 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생기는 두려움의 본질은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모든 관계를 내가 붙잡고 통제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기준이 ‘신해행화’입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信), 관계 속에서 이해하며(解), 지금 필요한 개입을 선택하고(行),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化)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하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개입해야 할 지점과 맡겨야 할 지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판단이 나를 거치게 하기보다,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관계를 연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성장은 더 많은 일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신해행화를 통해 더 넓은 관계로 나아가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관게가 넓어지면 두려움도 함께 커진다

삶은 본래 불확실성을 다루는 과정입니다. 그 불확실성 안에는 희망이라는 긍정의 가능성도, 손실과 실패, 그리고 고통이라는 부정의 가능성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예측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맡은 일도, 그날의 분위기도, 심지어 나의 컨디션조차도 매 순간 달라집니다.

축구 선수를 떠올려봅시다. 경기장의 상태도, 상대 선수의 움직임도, 동료의 컨디션도, 관중의 반응도 축구 선수 1명이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고, 태클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며, 야유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진 뒤 그대로 주저앉을지 다시 일어설지, 야유에 무너질지, 다음 플레이에 집중할지는 그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기의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어도, 그 순간 어떤 태도로 다시 움직일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넓어진다는 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만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해야 할 사람이 늘고, 연결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개입해야 할 순간이 잦아질수록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자리 잡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두려움 앞에서 내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입니다.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며, 나를 변화시킨다

이때 필요한 지혜가 신해행화(信解行化)입니다. 먼저, 신(信)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 그 상황은 관계로 이해할 수 있고 내가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앞에서는 어려움이 먼저 다가오고 두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재’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개입이 있고, 그 개입을 통해 다음 경험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을 때, 어려움과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신은 곧, 상황이 나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현재 판단이 더 좋은 다음 경험을 만든다는 믿음입니다.

해(解)는 상황을 관계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사건 하나가 곧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사건 안에서 어떤 관계의 흐름을 읽어내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늦어졌다면, 그것을 나의 부족함이나 누군가의 책임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객이 기대하는 결과가 충분히 확인되었는지, 구성원이 맡은 역할과 우선순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는지, 필요한 정보가 제때 공유되었는지, 판단해야 할 기준이 분명했는지 등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해는 상황을 고정된 요인이 아닌 관계를 바탕으로 읽어내는 태도입니다.

다만 믿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행(行)은 믿고 해석한 것을 토대로 CSR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관계에서 무엇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고, 상대기반 목적중심으로 소통하고, 가치기반 성과중심으로 전략을 세우며, 객관기반 합리중심으로 성찰하는 것입니다. 개입한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의 말을 한 번 더 듣는 것, 필요한 순간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감정이 아니라 목적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개입 행동입니다.

그 반복이 결국 나를 변화하게 하고 성장시켜줍니다. 화(化)는 억지로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의 판단과 반응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애써야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같은 상황에서도 예전처럼 두려움에 머무르기보다 먼저 확인하고, 더 넓게 이해하고, CSR로 개입하게 됩니다. 결국 화는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변화가 아니라, 신-해-행의 경험이 반복되며 서서히 내 안에 내재화되는 과정입니다. 내재화를 통해 다시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경험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게 합니다.

이지선 교수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큰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그녀는, 고통 앞에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고를 “당했다”고만 여기지 않고, 사고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바꾼 것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사고와 상호작용하는 자신의 태도였습니다. 절망하고 주저앉는 대신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희망을 건넸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지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세상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분명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신해행화는 이 과정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나의 원을 넓히는 과정

그리고 이 변화는 결국 내가 그려놓은 원을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자기 감정, 자기 기준, 자기 책임 범위 안에서 세상을 봅니다. 그 안에서는 익숙하고 안전한 것 같지만, 관계가 넓어질수록 그 작은 원은 오히려 나를 가두는 경계가 될 수 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원」에는 사람마다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원을 그리고 산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만 겨우 들어가는 새 둥지 크기의 원을 그린 사람도 있고, 대양을 품을 만큼 커다란 원을 그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원은 감옥이 되고, 어떤 원은 자신을 태우며 해방에 이릅니다.

관계가 두렵게 느껴질 때는 먼저 현재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더가 되면서 관계가 너무 많아져 힘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작은 원 안에서만 관계를 다루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또 모든 판단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정보가 나에게 모여야 안심하는 것은 아닌지,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데도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관계가 내 안에 갇히면 그 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모든 관계가 나를 거쳐야만 움직이고, 모든 판단이 내 안에서 멈춥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그 관계는 병목이 됩니다. 반대로 원이 넓어지면 사람들이 리더인 나에게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필필요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 전달되고, 의사결정은 조직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며, 각자의 문제의식은 고객에게 필요한 가치로 연결됩니다.

원을 넓힌다는 것은 더 많은 일을 내가 떠안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많은 관계를 내 안에 소유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내가 만나는 관계를 더 넓게 이해하고, 더 정확하게 연결하고, 필요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해행화를 통해 나의 태도와 판단 방식이 달라질 때, 내가 그려놓은 작은 원도 조금씩 넓어집니다.

자신과 세상을 믿고 현재에 최선으로 개입하기

관계가 넓어질수록 두려움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더 넓은 원을 그리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더 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더 큰 역할을 맡고, 더 복잡한 문제를 다루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불확실성도 커져가고 있는 것이지요.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움을 건너가면 됩니다.”

“상황을 모두 통제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의 판단으로 개입하면 됩니다.”

“관계를 내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넓은 원으로 흐르게 하면 됩니다.”

자신을 믿고, 지금의 역할을 믿고, 현재에 최선으로 개입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관계를 리더가 직접 해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필요한 정보가 제때 공유되게 하며, 각자의 욕망과 문제의식이 고객이 원하는 가치로 이어지게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관계를 조금 더 좋게 만든 시간은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