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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3.

최근 들어 일이 제자리에서 멈춘 듯 답답함을 느낍니다. 단순히 ‘더 열심히 하자’라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관성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방법이 필요할까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성과도 성장도 그대로인 것 같은 답답한 순간들 말이죠. 새로운 각오를 다져보고 이런저런 계획도 세우지만, 여전히 그 정체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익숙한 습관과 방식이 만들어내는 ‘관성’ 때문입니다. 아무리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무의식은 항상 익숙한 길을 택하려 합니다. 이 관성의 힘이 워낙 강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안전하고 편한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시도를 향한 용기는 점점 줄어들고, 일은 더욱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게 되죠.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

그렇다면 우리는 왜 관성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 뇌가 가능하면 에너지를 덜 사용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뇌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투입할 에너지 대비 얻을 수 있는 보상을 계산하는 것이죠.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큰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파민을 분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익숙한 상황에서는 굳이 추가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으니 도파민 분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노력만 투입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나 새로운 업무를 맡았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새로운 연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기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새로운 업무에서도 성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 큰 보상을 받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것이죠.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이나 익숙한 업무는 어떨까요? 이미 결과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기에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늘 하던 대로 하면 돼’라는 익숙함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렇게 보상이 뻔해진 상황에서는 뇌가 더 이상 많은 에너지를 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연히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현상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를 원하면서도 늘 하던 방식을 반복하며 익숙한 패턴을 따르는 이유는 그저 귀차니스트여서가 아니라 뇌의 본능적 작동 방식 때문입니다. 뇌는 언제나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보상을 얻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익숙한 길을 택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관성은 편안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만, 사실은 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적이기도 합니다.

관성을 깨는 전환점: 시간의 유한성

그렇다면 이 관성에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익숙하고 안전한 틀 안에 머무르고자 하는 뇌의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자극과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시간이 무한하다고 느낄 때는 ‘나중에 기회가 또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관성대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유한하다는 현실을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수도 있다’는 간절함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작은 도전조차도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언젠가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마치 오래된 브라운관 TV가 지지직 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뚝’ 하고 꺼지듯이, 인생의 종점도 예고 없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이 현실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삶의 나침반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매 순간을 더 깊고 충실하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권리ᆞ책임ᆞ의무를 다하는 최대한의 삶

역설적이게도 죽음은 삶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은 오늘을 허투루 살 수 없다는 자각을 줍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닌 특별한 권리, 의무, 책임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묻고 추구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빅뱅 이후 138억 년의 역사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삶의 가치를 탐구하며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적이자 권리입니다.

둘째, 우리는 세상과 연결된 존재이기에 ‘의무’를 지닙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 사회로부터 받은 배움과 기회는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받은 모든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셋째, 우리는 언젠가 떠나더라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삶은 끝나지만, 우리가 남긴 정신적 가치와 흔적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횃불이 됩니다. 죽음을 마주한 후에도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책임의 삶입니다.

결국 최대한의 삶이란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온전히 누리고, 받은 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의무를 실천하며, 떠난 뒤에도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밝히는 책임을 지는 삶’입니다. 이렇게 자신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세상으로 ‘나를 넓혀가는 삶’이야말로 유한한 시간을 가장 값지게 살아내는 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최대한 살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입니다. 익숙한 관성을 넘어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용기,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그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최대한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